세상에 이혼을 생각해 보지 않은 부부가 어디 있으랴.
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못 살 것 같던 날들 흘러가고,
고민하던 사랑의 고백과 열정 모두 식어가고,
일상의 반복되는 습관에 의해 사랑을 말하면서 근사해 보이는 다른 부부들 보면서, 때로는 후회하고 때로는 옛사랑을 생각하면서 관습에 충실한 여자가 현모양처고, 돈 많이 벌어오는 남자가 능력 있는 남자라고 누가 정해놓았는지.
서로 그 틀에 맞춰지지 않는 상대를 못마땅해하고 자신을 괴로워하면서 그러나,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 귀찮고 번거롭고 어느새 마음도 몸도 늙어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아 헤어지자 작정하고 아이들에게 누구하고 살 거냐고 물어보면 열 번 모두 엄마 아빠랑 같이 살겠다는 아이들 때문에 눈물짓고, 비싼 옷 입고 주렁주렁 보석 달고 나타나는 친구 비싼 차와 풍광 좋은 별장 갖고 명함 내미는 친구, 까마득한 날 흘러가도 융자받은 돈 갚기 바빠 내 집 마련 멀 것 같고, 한숨 푹푹 쉬며 애고 내 팔자야 노래를 불러도 어느 날 몸살감기라도 호되게 앓다 보면 빗길에 달려가 약 사오는 사람은 그래도 지겨운 아내, 지겨운 남편인걸.
가난해도 좋으니 저 사람 옆에 살게 해 달라고 빌었던 날들이 있었기에.
하루를 살고 헤어져도 저 사람의 배필 되게 해달라고 빌었던 날들이 있었기에.
시든 꽃 한 송이 굳은 케이크 한 조각에 대한 추억이 있었기에.
첫 아이 낳던 날 함께 흘리던 눈물이 있었기에.
부모 喪 같이 치르고 무덤 속에서도 같이 눕자고 말하던 날들이 있었기에.
헤어짐을 꿈꾸지 않아도 결국 죽음에 의해 헤어질 수밖에 없는 날이 있을 것이기에.
어느 햇살 좋은 날 드문드문 돋기 시작한 하얀 머리카락을 바라보다 다가가 살며시 말하고 싶을 것 같아
그래도 나밖에 없노라고.
그래도 너밖에 없노라고.
혼자만의 시간 목이 마를 때 물을 찾듯이 우리는 영혼의 갈증을 느낄 때면 평원이나 들판으로 걸어 나간다.
그곳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.
그리고는 홀연히 깨닫는다.
혼자만의 시간이란 없다는 것을.
대지는 맞갖잖은 혼들로 가득 차 있고,
부지런히 움직이는 곤충들과 명랑한 햇빛이 내는 소리로 가득 차 있기에.
그 속에선 누구라도 혼자가 아니다.
자신이 아무리 혼자뿐이라고 주장해도 혼자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.
- <나는 왜 네가 아니고 나인가> 중에서